What the modern means of reproduction have done is to destroy the authority of art and to remove it – or, rather, to remove its images which they reproduce – from any preserve. For the first time ever, images of art have become ephemeral, ubiquitous, insubstantial, available, valueless, free. They surround us in the same way as a language surrounds us. They have entered the mainstream of life over which they no longer, in themselves, have power.
- Berger, John, Ways of Seeing, BBC and Penguin Books Ltd., 1972
사진기의 발명은 이미지의 복제를 가능케하고, 이미지의 복제는 본래 이미지(그림)의 권위를 떨어트렸는데, 그러면서 사람들은 글과 이미지를 동일선상에서 바라보게(인식하게) 되었다는데, 이를 나 개인적인 상황에 비춰보자면.
나에게 이미지의 감이 떨어지기 시작한 것은 나와 이미지간의 관계가 소홀해지기 시작하면서부터.
이는 붓글씨에서 시작하여, 수채화를 하고, 연필로 소묘를 할때의 느낌이 정형화된 패턴(복제가능한 것들)을 텁텁한 포스터칼라 물감으로 소화시킬때쯤부터. 이는 나에게 폐쇄공포증 비슷한것을 몰고왔으며, 동시에 기억된 손에 묻는 맛들을 잊게 만들었다. 유화를 보며 같은 답답함을 느끼고, 벽돌건물을 보면서도, 엘리베이터를 타서도…다행히도 그 때 잃었던 손맛은 사포치는 데서 현재 찾고있는중.
어찌됐건 그 와중에 고3때 만난 나의 문학선생님 김철수선생님은 정지용의 ‘유리창’을 읽으며 눈물을 흘리셨는데, 이로써 단어는 신기하게도 고귀한 저 히말라야 윗자락에 위치하게 된다.
- 영국에서 나의 책들이 온 것을 기념하여 묵혀뒀던 책들을 훑던중 지나가던 생각이다. 뭐라는지 잘 모르겠으나 원래 일기장이 그런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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